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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라는 동전의 뒷면은 기회...바로 지금이 토지 투자 적기

by 블루델리 2024.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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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 '위기의 다음은 기회다' 

 

요즘 땅 투자 고수들이 전해 주는 투자 격언이다. 지금까지 토지시장에 침체 국면이 지나면 반드시 활황 장세가 찾아왔던 점을 빗댄 말이다. 

 

실제로 토지시장에선 이런 순환 과정을 몸소 경험한 투자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위기라는 동전의 뒷면은 바로 기회라는 격언을 실천해 대박의 꿈을 실현한 사람이다. 

 

중개 실패한 땅을 본인이 직접 매수

 

경기도 이천에 사는 이모(48)씨는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는 이천의 한 부동산중개사무소 사무 보조원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잘 아는 고등학교 선배(부동산공인중개사)의 잔심부름이나 거들고 있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IMF 외환위기가 절정을 이룬 1998년이다. 우연한 기회에 경기도 광주에서 급매물로 나온 밭(1700㎡)의 중개 업무 보조를 맡았다.

 

다른 일로 바빴던 그의 선배가 평소 눈여겨봤던 이 씨에게 매매계약서 체결 업무를 일임한 것이다. 


이 씨가 매매 대행을 맡은 밭은 당시 시세로 3.3㎡당 30만원 가량 호가하던 땅이다. 그런데 갑자기 불어 닥친 불황(IMF 외환위기)으로 급전이 필요해진 땅주인이 3.3㎡당 20만원에 땅을 급매물로 내놨다. 


그러나 경기 급락에 따른 투자수요 위축으로 '작자(매수 희망자)'가 좀처럼 붙지 않았다. 땅값은 금새 3.3㎡당 15만원까지 뚝 떨어졌다. 

 

땅주인이 매도 희망가를 조금 더 낮추자 입질이 왔다. 서울 강남에 근거지를 둔 '급매물 사냥꾼'들이 달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매도 희망가(3.3㎡당 15만원)와 매수 희망가(3.3㎡당 10만원) 차이가 너무 컸다. 흥정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믿고 맡겼더니 일 처리를 제대로 못한다”는 선배의 질책이 이 씨에게 쏟아졌다. 


고민하던 이 씨는 결국 자신이 그 땅을 직접 매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씨는 결혼자금으로 평소 한두 푼씩 모아두었던 돈을 투자해 이 땅을 3.3㎡당 12만원(총 6200만원)에 계약했다. 모자라는 돈은 지인들에게 빌려서 채웠다. 


당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부동산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그의 투자 결정은 커다란 모험이었다. 자칫 애써 모은 결혼자금을 날릴 수도 있었다. 

 

[사진 Pixabay]

 

단  2년 새  400% 가까운 수익률 올려 

 

하지만 2년 뒤 대반전이 일어났다. 정부의 강력한 경기 부양책으로 부동산시장이 되살아나면서 여기저기서 땅을 팔라는 전화가 걸려 오기 시작한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씨 소유 땅은 전철(성남∼여주 복선전철) 역사 후보지와 붙어 있는 노른자위 땅이었다. 


이 씨는 적절한 매도 타이밍을 기다렸다. 서 너 달쯤 지나자 땅값이 3.3㎡당 60만원까지 치솟았다. 이 씨는 흥정 끝에 한 업자에 3억1000만원에 땅을 넘겼다. 양도세 등 세금을 제외하고도 3억 원에 가까운 현금이 이 씨의 수중에 떨어졌다. 2년 새  400% 가까운 수익률을 올린 셈이다. 


뜻하게 않은 거금을 손에 쥐게 된 이 씨는 크게 고무됐다. 역시 믿을 것은 땅 밖에 없다는 신념을 굳힌 것도 이 때부터다. 
이 씨는 땅 투자로 벌어들인 수익의 대부분을 이천․광주․용인 등지의 급매 땅을 사는데 재투자했다. 

 

그렇게 사들인 땅이 한때 3만5000㎡(8필지)가 넘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자 전국 땅값이 또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이 씨가 보유하고 있던 땅 값도 뛰었다. 시가로 따져보니 보유 땅값이 50억 원에 가까웠다. 


드디어 이 씨에게도 봄날이 시작됐다. 이천에 집과 차를 마련하고 결혼도 했다. 사업 분야를 확대해 펜션단지 개발과 분양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봄을 거쳐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겨울은 시작되는 게 자연의 순리다. 

 

강력한 정부 규제로 '땅 거지' 전락

 

2005년 정부는 땅 투기를 막겠다는 명문을 내세워 규제의 칼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비업용 토지(부재지주 농지)에 양도소득세 중과세를 시작으로 실거래가 등기부등본 기재, 토지거래허가제 강화 등의 ‘핵폭탄’급 규제 강화책이 잇따랐다. 

 

토지시장은 급속히 얼어붙었다. 거래가 중단되고 땅값은 하향세로 돌아섰다. 이곳저곳에서 문을 닫는 땅 거래 전문 부동산중개업소가 속출했다. 


이 씨도 예외는 아니다. 급전이 필요해 보유하고 있는 땅을 급매물로 내놓았지만 거들떠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매도 희망가를 낮추고, 일시불 거래(계약금․중도금․잔금을 한꺼번에 받는 대신 땅값을 20~30% 깎아주는 거래방식)도 시도해 봤지만 시원치 않았다.  

 

사업이 잘 안풀려 급전이 필요한 상황인데, 급매물로 내놓은 땅은 팔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씨는 당시 주변 지인들에게 "옛말에 땅 많은 거지가 있다더니 내가 바로 그 처지"라며 "땅이 팔리지 않아 신용불량자가 될 판"이라고 하소연을 쏟아내곤 했다. 

 

정권 바뀌면서 다시 찾아 온 반전


하지만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2008년 정권이 바뀌면서 숨통이 트일 기미가 보였다. 토지시장을 옥죄던 각종 규제들이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급매물로 내놓았던 땅도 일부 처분할 수 있었다. 


한숨 돌린 이 씨는 용인․안성․평택 등 수도권 남부지역에 자주 답사를 나갔다. 경기 침체로 무릎까지 빠진 급매물 땅을 낚아채기 위해서다. 오히려 시장이 안 좋을 때를 매입의 적기로 본 역발상의 투자 전략이다. 경기 침체기 다음에 나올 부양책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다 2002년 이씨는  땅을 팔아 얻은 차익을 고스란히 다시 용인에 재투자했다. 친구가 운영하는 부동산중개사무실에서 일하면서 평소 봐두었던 땅이었다. 수도권광역교통망계획에 따라 곧 경량전철 역사가 들어설 부지 인근이었다. 


호재가 점차 가시화하면서 용인 땅값도 오르기 시작했다. ㎡당 10만원에 사들인 이 땅(임야 5000㎡)은 15년이 지나 ㎡당 150만원을 호가했다. 

 

이씨는 2019년 이 땅을 고급 빌라단지 개발회사에 20억원에 매각했다. 세금을 제하고도  40여 억 원의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나가는 말

 

이는 이씨가 1997~1998년 외환위기 당시 학습효과로 체득한 땅 투자 철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요약하자면 위기라는 동전의 뒷면은 기회이며, 토지 투자 적기는 시장에 침체의 그늘이 깊은 때라는 것이다. 


이 씨는 요즘 “겨울 다음엔 반드시 봄이 오게 마련"이라며 “이 점을 꿰뚫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격변하는 재테크 전선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다”고 되뇌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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