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토지시장의 패러다임 변화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실거래가 등기부등본 기재(실거래가 신고) 제도'다. 이 제도는 땅을 사고 팔 때 매매 당사자가 실제 주고받은 거래금액을 토지등기부등본에 공개하는 것이다. 2006년 시행에 들어갔다.
이 제도는 언 듯 보면 매우 간단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토지시장에 불러온 파급효과는 실로 상상초월이다. 이 제도는 무엇보다 토지시장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만들어 놓으면서 땅을 사고팔아 차익을 챙기는 ‘시세차익’형 땅 투자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실거래가 신고제가 불러운 토지시장의 변화
이런 점에서 실거래가 등기부등본 기재 제도는 1995년 시행된 부동산실명제 못지않게 혁명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제도 시행 이전까지 땅값은 ‘신고할 때 따로’ ‘세금 낼 때 따로’ ‘대출받을 때 따로’였다.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마다 다른 가격을 쓰던 관행이 수백년 역사를 이어 왔다.
그만큼 토지시장에 통용되던 땅 가격의 종류가 많았다는 얘기다. 정부가 조사해 발표하는 공시지가에서부터 감정평가액, 기준시가, 매도호가, 매수호가, 급매가, 흥정가 등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10여 가지가 넘었다. 각종 세금을 매기는데 필요한 기준도 공시지가, 기준시가, 과표, 실거래가 등으로 다양했다. 그러다 보니 토지시장에 투기, 탈세 등이 난무했다.
토지시장에 '다운계약서'가 판을 쳤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해진 가격(정가, 단일가격)이 없다보니 ‘거래따로’ ‘신고따로’식 이중 계약이 극성을 부렸다.
다운(down)계약서는 매도·매수자 모두 실거래가보다 낮게 작성하는 식이다. 이때 매도․매수 자는 본인들이 실제 주고받은 금액으로 작성한 정상계약서를 별도로 작성해 보관하기도 한다.
토지시장에 다운계약서가 성행했던 것은 매수자는 취·등록세 수백만원을, 매도자는 양도세 수 천 만 원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2006년 경기도 남양주 임야(5000㎡)를 5억원에 매입한 K씨가 올해 이 땅을 6억원에 S씨에게 팔았다고 치자.
만약 K씨가 실제 매도가(6억원)대로 계약서를 썼다면 양도세로 2086만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실제 매도가보다 5000만원 가량 낮춘 5억5000만원으로 다운계약서를 썼다면 양도세는 716만원으로 확 줄어든다.
다운계약서를 쓰면 K씨로부터 땅을 사들인 매수자(S씨)에게도 이익이다. 땅의 소유권을 내 앞으로 이전 등기할 때 내는 취득·등록세를 많게는 절반 가량 줄일 수 있어서다.
그러나 2006년 실거래가 등기부등본 기재 제도가 시행에 들어간 뒤부터는 사실상 다운계약서 작성이 불가능하게 됐다. 그만큼 땅 투자 매력이 줄어든 것이다.
현재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록세 등의 주요 세금이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매겨지고 있다. 과거 감정평가액을 토대로 대출액 수준을 결정하던 은행권에서도 요즘 실거래가를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실수요자가 아니면 땅을 사지도 팔지도 말라"
실거래가 등기부등본 기재 제도는 사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엄청난 사건이다. 유사 이래 우리나라에서 토지에 관한 한 단일가격이 정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토지시장에 끼친 충격도 적지 않다.
이 제도는 무엇보다 투자자의 토지시장 이탈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세금을 내고 나면 건질 게 별로 없다고 보는 비관적 전망 때문이다. 무엇보다 투자자의 투자 심리 위축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가수요(투자수요) 위주에서 실수요 중심으로 토지시장 재편 현상도 빨라지고 있다. 실수요가 아니면 땅을 사지도 팔지도 말라는 정부의 의지가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한 토지 전문가는 “너무 맑은 물에 물고기가 살 수 없다는 있다. 이것이 유리알처럼 투명해진 요즘 토지시장에 투자자의 시장 탈출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